바람이야기 - 아내와의 첫날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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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내와 결혼을 하고
2~3년이 지나갈 무렵으로 기억한다.
당시 난
직장에서 권력투쟁에 몰두하고 있었고
육아를 위해
직장까지 그만 둔 아내는
심한
우울증을 견디고 있었다.
그모습 그대로
버려두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불쑥 찾아오는 담쟁이 속 장면들이
여전히 날 괴롭히고 있었으니
비열하게 뒤틀린 심사는
아내를
가정이란 올가미 속에 가둬두고
독한 심술을 부리고 있었던 거다.
무릎을 굽혀 가슴에 모아 쥐고
먼 곳을 응시하던 아내의 모습을
종종 외면했던 기억들.
어쩌면 아내는
결혼전 이야기들로 인해
닥처오는 어떤 상황이든
수용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질투는 소유욕의 산물이고
소유욕은
독점의 욕망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개개인은 온전히
독립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깊숙히 흐르는 감정까지도
개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
그 교만이 아내를 배신자로 낙인찍고
치졸한 인질극을 벌이고 있었다.
2
창녀촌을 박차고 나온 이후
까닭도 설명하지 않은 채
문자도 전화도
일방적으로 끊어버리고.
1주 남짓의 시간을 견뎌내고 있었다.
내 안에서 요동치는
불안한 심사를
아내에게 들키긴 싫었으니
헤어져도 아무렇지 않을만큼
애를 쓰고 나면
한 번 쯤 찾아
정식 작별을 고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인간이 만들어내는 사연은
계획된 설계도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난데없는 시련이 불쑥불쑥 찾아와
고단한 심사를 휘져어 놓기도 하고
갑자기 감당 못할 행복이
내 혼을
쏙 빼놓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차분하게 맞이하고 인내하면
그 뿐이지만,
인간은 때로
그 난데없는 불청객에
휘둘려버리기가 일쑤이니
난
담쟁이 아래 숨막혔던 순간 이후
1주를 훌쩍 넘기는 동안
나를 찾아온 이 난데없는 손님을
제법 그럴듯하게 감당해 냈던 것일까?
그래서
내게 다시 허락된
충만한 순간들을
담담하게
만끽 할 수 있었던 것일까?
3
일주일을 넘겨 지났을 무렵
늦은 밤
무거운 몸을 끌고
난곡동의 반지하방으로 돌아왔을 때
어두운 곳 한 켠에서
청바지에 야구모자까지 눌러쓴 아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색한 기운이
설레는 마음과 뒤엉켰으나
아내는
연락을 두절한 채
잠적해버린 이유는 묻지도 못하고
나를 보자마자 눈물부터 글썽거렸다.
아내를 만나고
수개월 쯤
폭포수처럼 쏟아부었던 감성이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으나
다독이지도
안아주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 들어온
너절한 방구석!
초췌한 형광등 불빛 아래
슬금슬금 곁눈질로 확인했던
아내의 충혈된 눈빛과
눈에 부실만큼 반짝거리던 볼살과 귀밑머리.
이미 아내는
내가 그날의 현장을 목격했을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고,
이후 무작정 이틀 휴가를 내어
서울까지 달려온 것이라고.
4
아내에겐 잘못이 없다.
마음이 흐르는 대로 놓아 두었을 뿐.
그러나 아내는
방구석 한 귀퉁이
구겨져 있던 내 앞에서
요구하지도 않은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인턴사원으로 들어온 아이.
저돌적인 구애에 일시적 만남을 허락한 후
그 날
술기운에 의지하여
자기를 찾아왔을 때까지
적당히 추려내고
적당히 생략된 이야기를
주어 섬기는 동안
불안한 낯빛으로
내 눈치를 살피는
아내의 눈알만 반짝이고 있었다.
5
형광등 불빛
단정하게 깔린 담요 위
알몸이 된 아내가
상기된 표정으로 누워 있었다.
내내
마음이 쓰이고
헤어짐이 아프다면
너는 그대로 행할 것이나,
나는 감당할 수 없어 떠나겠다는 말에
한 동안 생각에 잠겼던 아내가
초라한 맥주상을 물리고 담요를 깔아만든
도발이었다.
내 손을 끌어 가슴에 얹고
그동안
간절하게 원했던걸 알았음에도
허락하지 않았던건
나를 놓지고 싶지 않아서였다고
그렇게
불을 끄려던 나를 제지하며
하나하나 몸을 벗기고
맨살로 밤을 하얗게 새울때까지
헤어날 수 없는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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