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병으로 복무 하다 여장교와 불륜한 썰 풀어 본다.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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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갔다 왔다면 ‘병들의 주적은 장교’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거다.
그리고 이 말은 원래 나와 그 여군사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저번 글에서 말했지만, 당시 나는 생반(생활반장)이다 보니 그 장교와 접촉할 기회가 다른 병들보단 많았고, 때문에 어느 정도 장교의 사고를 이해하려 했기 때문에 다른 병들처럼 그 여군을 ‘완전 개새끼’라고 까지 생각하진 않았다.
이건 내가 변절자라 그런 게 아니고.
아무래도 생활반장으로서 병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얘기(비록 대등한 입장이 아니라 일방적일 때가 많았지만)같은 것들을 그 장교와 많이 하려고 했는데, 그러다 보니 역으로 ‘장교의 입장’을 들을 일이 일반 병들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가령 병들이 볼 때 부조리 같아 보이는 것이 있어 이런 부분은 풀어 주면 어떠냐고 장교와 담판 지으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여장교가 이거는 이러이러 해서 왜 안 되고, 왜 이래야만 하며, 군인복무규율 같은 것들에 명시된 사항들 까지 언급해가며 논리적으로 말해 역으로 설득당한 적도 많았기 때문이다.
병 입장에선 원통하고 좃같지만... 그래도 막상 그 앞에 서면 뭐라 반박하기 힘들었고 결국 어느 정도 장교의 입장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 여군은 들어주고 설명하려는 척이라도 했지 다른 장교들은 더 나쁘면 나빴지 좋진 않았다.)
하지만 나 역시 기본적으로 부려 먹히는 입장인지라 그 장교에 썩 좋게 생각하진 않았다.
때론 감정적인 일도 있어서 다른 병들보다 그 여장교에 대해 더 좃 같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니까 결론은, 당시 내가 아무리 다른 병들보단 좋게 생각해 주려고 해도 그 여군은 ‘착실하고 깐깐하지만 그렇기에 너무 피곤한 (때론 좃같은)장교’정도 였고, 다른 남군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여군과 ‘그런 일’로 엮이리라고 생각을 못했었다.
그런데 내가 생활 반장을 단 이후, 어떤 사건으로 인해 나와 여장교가 이전보다 친해지는 계기가 있었다.
그 사건이 일어날 당시, 배가 입항한 후 한창 휴가를 돌리던 시기였다.
저번에도 설명했듯 해군은 휴가 나갈 때 정복검사를 하는데, 그때 하정복 시즌이라 정복관리가 힘들었던 시기였다.
알 사람은 알겠지만 해군 하정복은 타군과 달리 하얀색이기 때문에 조금만 문제가 있어도 눈에 띄기 쉽다.
그리고 당시 우리침실 고참이 정복검사를 받다가 이걸로 걸리게 된다.
그 고참이 분명 깨끗이 빨고 다려 왔지만 어디서 묻었는지 모를 얼룩이 묻어 있던 거다.
당시 사관실에서 검사하던 남자 장교가 (이 날은 ‘그 여군’이 당직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장교들이 정복검사를 설렁설렁 하는 건 아니다.) 다시 정비하라고 돌려보냈는데 얼룩이 비누칠해도 지워지질 않았다.. (그렇다고 당장 다시 빨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그 선임이 나에게 정복 좀 빌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오래 되서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내 휴가 차수는 마지막이었지만 그 사이 어떤 행사 때문에 미리 깨끗하게 준비해 뒀던 거로 기억한다.)
선임이 부탁하는데 어떻게 후임이 거절하나, 당연히 줘야지.
게다가 그 전에도 이런 식으로 나나 후임들에게 정복을 빌려간 선임들이 많았기 때문에 별 문제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날은 이게 화근이 됐다.
그날 당직을 서던 장교 촉이 얼마나 날카로웠던지, 선임이 가자마자 바지 안에 적힌 이름을 확인 했다고 한다...
당연히 거기엔 선임이 아닌 내 이름이 적혀 있었고, 정복을 바꿔치기한 게 바로 들통이 났다.
게다가 하필 이 날 당직 선 장교가 보통 성깔이 아니었던지라 선임은 물론이고 나까지 사관실로 불려가 작살이 났다. (그리고 난 생반이라 더 박살났다. 모범이 되야할 생반이 이딴 짓을 저질렀냐면서.)
그리고 선임과 나 둘 다 휴가 잘리고 과실보고를 하게 됐다.
휴가 가기는 더럽게 힘든데 잘리는 건 순식간이었다...
억울하고 분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첫 휴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휴가만 보고 살았는데 진심으로 마음속에서 뭔가 울컥하고 치밀어 올랐다.
게다가 이번 휴가는 가족들이 오래 전부터 내 휴가 일정에 맞춰 가족여행을 떠날 계획까지 세워 둔 중요한 휴가라 더 그랬다.
하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후였기에, 그 일이 있고 다음날, 나는 과실보고를 위해 그 여군을 찾았다.
과실보고 결제를 받으려면 우리 직별 부사관들이랑 장교를 찾아 사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배에서 이 사인을 받기위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것도 스트레스다.)
그 여군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과실보고서 사인을 받기위해 결제 판을 보여줬는데, 가만히 듣고 있던 그 여군이 물었다.
‘왜 네가 과실 먹어?’라고.
그 말을 듣고 놀라 뭔가 말하려는데 여장교가 계속 말했다.
‘안 봐도 무슨 일인지 알겠다. 고참 말을 네 짬에 어떻게 거역 하냐. 이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넌 그냥 가라.’
그러면서 내 과실보고 용지를 쏙 빼갔다.
그리고 나중에 침실에 걸려온 전화로 내 과실 보고랑 휴가 잘린 게 취소 됐다는 얘길 들었다.
여장교가 내 휴가 자른 남자 장교보다 선배였는데 잘 말해줘서 취소시켰다고...
이때 정말 고마워서 어쩔 줄 몰랐다. (단, 살아남은 건 나뿐이었고 내 정복을 빌려간 고참은 그대로 휴가 잘렸다.)
사실 휴가 잘린 일 뿐만 아니라 그전에 있었던 여러 일들이 누적 되서 힘들었던 때라 더욱 그랬다.
독쟁이에게 전역하기 전까지 개처럼 학대 가까운 걸 당했던 것도 그렇고... (그 놈이 있었을 때 이병은 벽보고 숨 쉬는 것만 할 수 있었다. 일병 땐 fcu나 창고같은 으슥한 곳에 끌려가 그놈의 샌드백 역할을 했고.)
별 좃 같은 것들로 시달리다 갑자기 떠밀리듯 생반 맡은 것도 그렇고... (임명될 땐 좋았지만 하다 보니 얼마나 스트레스 받는 건지 알았다. 온갖 것들로 다 덤탱이 쓰고. 생반이란 이유 때문에 뭐 같은 일들도 많아 너무 서러웠다. 보상은 휴가 며칠 더 주는 건데 그마져도 나중에 다 잘린다.)
여기 다 적지 못했지만 온갖 것들로 정신적, 육체적 피로가 극에 달하던 때였는데 이렇게 휴가 한 번 챙겨주니까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물론 평소에 그 장교가 워낙 깐깐하고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 장교이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 심리가 그런 게 있지 않나.
맨날 잘해두면 호구처럼 보이는데, 맨날 힘들게 하다 한 번 잘해주면 감동받는 거.
물론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거 알아도, 살다보면 그게 잘 안 된다는 거 다들 알거다.
아무튼 하도 고마워서 휴가 복귀 할 때 여행지에서 사온 감귤 초콜렛을 여장교한테 주며 감사를 표했다.
뭐, 한번 잘해줬다고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싹다 바뀌는 건 아닌지라, 시간이 좀 지나면서 다시 원상복귀 되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전보다 서로 친해진 건 확실했다.
아직 사무적인 관계에 지나지 않고 갑과 을의 관계였지만 (상사 농담에 맞장구 처 주는 부하 정도의 관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때 엷어진 나와 여군 사이의 벽이 후에 있을 어떤 일의 단초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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