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우크라이나가 같은 민족이였던 결정적 증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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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예프 루스(키예프 공국) 882년~ 1240년
동슬라브 민족 최초의 나라이다. 현재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
동슬라브 계통 국가인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에서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자신들의 시조가 되는 국가가 게르만인에 의하여 건국되었다는 반감이 있어서 이를 부정하며, 키예프 루스가 동슬라브인들이 세운 나라라는 주장을 하고 있기도 하다.
류리크가 지금의 벨리키 노브고로드에서 류리크 왕조를 세우고, 제2대 대공에 오른 바랑인 올레그가 882년 지금의 우크라이나 지방을 정복하고 중심지를 이 곳에 옮긴 키예프 루스가 우크라이나의 시초다. 이 키예프 공국(키예프 루스)은 러시아 역사의 시초이기도 하므로 러시아와 벨라루스, 우크라이나는 본래 한 뿌리였다.
킵차크 칸국 1237년 ~ 1502년
킵차크 칸국은 몽골 제국이 분열된 이후에 설립된 4대 칸국 가운데 하나이다.
칭기즈 칸의 장남인 주치의 아들 바투가 유라시아 서부 초원 지대를 휩쓸고 다니면서 사실상 킵차크 칸국의 기틀을 닦았다.
전성기 영토는 서쪽으로 현재의 몰도바,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동쪽으로는 시베리아, 북쪽으로는 현재의 러시아, 남쪽으로는 흑해 연안까지 이르렀던 국가다.
칸국은 이후 모스크바와 크림 칸국의 공세에 밀리게 되어 결국 1502년 크림 칸국과 모스크바 공국에게 정복당한다.
모스크바 공국 (킵차크 칸국의 속국) 1547년까지 유지 되었다. 현재 러시아의 수도이며
키예프 공국에서 갈라져 나온 수많은 제후국들 중 상대적으로 춥고 열악한 북동쪽에 위치한 제후국이었던 블라디미르-수즈달 공국, 그 중에서도
가장 가치없던 모스크바 지방에서 출발해 다른 제후국들에 비하면 비교적 후발주자에 해당하는 제후국이었지만 몽골-타타르의 멍에 시기에 세력을 크게 키워 제후국들 중 최종 승리자가 되어 타타르의 멍에 시기를 종식하고 동북부의 루스 지역을 통합
루스 차르국 1547년 ~ 1721년
루스 차르국의 시초는 키예프 공국의 일파인 모스크바 대공국에서 시작된다.(우크라이나의 수도는 키예프) 15세기 이반 3세는 몽골의 지배에서 벗어나 인근에 널려있던 수많은 소국들을 통합하여 연합체적인 모습으로 러시아를 키워나갔다.
이반 4세가 죽은 후 러시아 내부는 혼란 시대가 왔고 강대국이었던 스웨덴이 개입해서 차르를 갈아치우는가 하면 폴란드-리투아니아에 의해 수도가 함락되고 차르(왕)가 폴란드 군주 앞에서 무릎을 꿇고 폴란드 왕태자가 차르에 즉위하는 등 제대로 굴욕을 당함
러시아 제국 1721년 ~ 1917년
러시아 제국의 시초는 루스의 군소공국 가운데 하나였던 모스크바 대공국이다. 모스크바 대공국은 14세기에서 15세기에 걸쳐 타타르족이나 주변의 루스 공국들과 싸우면서 세력을 확대, 이반 3세 때 처음으로 스스로를 차르라고 자처했다.
보시다시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역사적으로 쭉 오래전부터 한국가 한민족이였으나
중간에 폴란드가 우크라이나를 강제 병합하면서 폴란드의 식민통치를 받았고.. 친러로 돌아선후
러시아에게 니네 우리 동포니깐 병합되게 도와달라해서 러시아 도움 받고
다시 러시아에 편입되었습니다.. 이게 1991년 현대에 구소련이 망하면서
원래는 과거 친러였던 우크라이나가 서유럽 편들면서 독립한게 지금의 우크라이나 입니다.
국제 정세는 이래서 영원한 동맹이란 없는거죠.. 국제 정세와 질서에 따라 바뀔뿐..
너무 국제정세를 인간 관계처럼 의리? 이런거로 생각하면 발생하는 오류입니다.
국제 정치는 야생입니다. 약육강식의 세계이고 주변 환경에 따라 변할뿐인 실리 외교가 우선시되죠..
감정에 치우쳐져서 저 나라는 의리가 없네 해봤자 소용도 없고 이해득실을 따져서 움직이는 국제 정세와 괴리감만 키우죠
벨라루스가 친러시아인 이유가.. 키예프 루스, 모스크바 루스(공국), 루스 차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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