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의 이야기 _ 5
옛 이야기
6
4049
7
0
2020.08.30 10:51
[ 고백 ]
머리가 굵어지고, 나름 이런저런 연애를 한 지금에서야
내 여자가 "나 오늘 안가" 라는 말을 한다면
눈에 불을 키고 방방방 거리며 호텔이든 모텔이든
차를 몰아 달려가겠지만.
20살 코찔찔이에게는 그럴 용기조차 없었어
더욱이 그곳은 난생 처음 가보는 생소한 동네
수원역 와본 사람은 알겠지만 1번 출구 앞쪽으로
꽤나 많은 먹자골목 및 숙박시설이 펼쳐져있자나?
난 구로역도 그럴줄 알았지.
하지만 울음이 그치도록 달래고 달랜 선배의 손을 붙잡고 나온
구로역 1번 출구의 모습은.
안그래도 미안해서 어쩔줄몰라 당황하고 있는 나에게
등뒤에 식은땀 까지 흐르게 만들 처참한 풍경이었어
눈 앞에 보이는건 아파트 단지와 동네 어르신분들이 탁주를 즐기고 계실법한
보쌈/족발. 빈대떡. 삼겹살집 약간…
울음은 그쳤지만, 기분은 딱히 풀어지지 않아 샐쭉 해진 선배를 데리고
무언가 지금 우리의 상황과 어울리지않는 그 거리를 그냥 쭉 걷게 되었어
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
선배를 이제 좋아하지 않는다거나, 밉상으로 보인다던가 그런것도 아니고.
지금도 이렇게 바라보면 누구나 예쁘다는 말을 할 정도로 아름다운 사람인데.
이미 가져버린 여자에 대해서는 흥미가 떨어져간다는 그런것일까?
되돌아 생각해보면 처음에는 내 세상은 온통 그녀에게 맞춰져있었고, 하루종일 그녀 생각뿐이었는데
어느덧 다른 친구들과 약속을 잡아 점점 타인과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고,
바보같이 게임을 한다는 핑계로 연락에 소홀한적도 있었고…
(호드의 명예를 위해 더러운 얼라이언스와 싸우는 xx. 레이드에 정신없던 철없는 시절이었죠;;)
입고 있는 옷. 다니고 있는 학교가 바뀌었고, 여체를 경험했다 뿐이지.
나는 미성숙한 고등학생 그대로였다는 생각에 스스로 착잡해지더라
한참 그녀의 몸을 탐할때 사랑한다고 속삭였지만, 과연 내가 진짜 사랑이라는걸 알기는 하나?
내가 느끼고 있는 지금 이 기분이 사랑이 맞기는 할까?
내 스스로도 확신이 없고, 방황하고 있는데. 그런 나에게 그녀가 사랑을 느껴달라는건 욕심이었던거 같아
복잡 미묘한 생각에 말이 적어진 나와, 코를 훌쩍이면서 땅만 보고 천천히 걷고있는 선배
온갖 생각이 뒤엉켜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잃어버린 생각과 방황하는 걸음.
한참을 그렇게 둘다 아무말 없이 걷다보니 작은 하천이 나왔고
그 하천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어.
(지금 찾아보니 도림천이고, 거의 신도림역까지 걸어갔었네)
밤 늦은시간 개울가에 물이 흐르는 소리와 스산한 바람소리만 가득하고
더 이상 걷는게 힘든듯하여 벤치에 앉아서 멍하니 밤하늘만 바라보고 있었지
그날 유독 그랬던것인지, 아니면 그곳이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그런곳인지.
밤마실 나온 동네주민들 한분 지나가지 않았고,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와 등뒤로 멀리 들려오는 차들이 지나다니는 소리만 가득한 그곳
미안하고 미안함에. 또 미안함에 쉽사리 입을 때지 못하는 나.
그 적막을 깬건 망설이다가 말하는듯 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한 그녀의 침울한 목소리였어.
"고등학교때 진짜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어"
"고1때 처음 보는 축제에 학교 밴드부 공연이 있었는데, 그때 그 무대에 한 오빠가 그렇게 멋있을수 없더라"
"많은 친구들이 그렇듯이 나도 그 오빠를 좋아하게 됬고"
"그 선배를 쫓아 밴드부에 들어가기위해 엄마를 조르고 졸라 기타학원도 다녔었다? ㅎ"
"어쩌다보니 밴드부에도 들어가고 그 오빠랑 사귀기도 하고… 그게 예전에 물어봤던 내 첫사랑이야"
"그 오빠가 해달라는거 다해줬고, 무서웠지만 남자는 그런거 좋아한다길래 그렇게… 사귀었어"
"근데 그렇게 자기는 가질거 다가져갔는데, 대학 가더니 연락도 잘 안해주고… 지금은 뭐 딴여자랑 잘지내겠지"
"처음 ㅇㅇ 가 동아리 들어오겠다고 왔을때, 그때 나 진짜 놀랬었어"
"딱히 어디가 닮았다 그런건 아닌거 같은데, 뭔가 분위기라던가 사람의 느낌이 그 오빠랑 되게 비슷했거든"
"그 사람도 너처럼 이쁘장한 남자였는데. 그래서 그런가 … "
"솔직히 말하면 너보다는 그 오빠를 생각하면서 좋아한다고 거짓말 했던거 같아… 미안해"
내가 그녀를 바라보던 시선과, 그녀가 나를 바라보던 시선이 달랐다는 사실에
나는 머릿속이 더욱 복잡해지고, 이게 뭔가 싶기도 하고.
이제 헤어지자는 이야기인가? 싶은 생각에 정말 한순간에 눈이 찡해오며 눈물이 돌더라
그런나를 바라보며 선배는 살짝 웃어주고 거꾸로 달래주듯 눈가를 훔쳐주며 이야기는 계속 됬지
"그런데… 어떻게 보면 홧김에 첫관계를 맺고, 계속 만나고 계속 바라보고, 계속 느끼다보니… 정말 네가 좋아졌어"
"처음에는 솔직히 예전 그오빠 생각하며 그랬는데... 그냥 너랑 하는것도 좋고 너랑 계속 같이있고 싶고. 그냥 니가 좋아"
"근데.. 그 오빠처럼 너도 나랑 그러고 나니까 점점 멀어지는거 같아서 무서워"
내가 뭐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그녀는 다시 울먹이며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끅끅 거리며 말을 계속 이어갔어
"나 조금만 더 좋아해주면 안돼??? 다른사람들은 나 예쁘다고 말도 많이해주는데 왜 너는 안해?? "
"나 싫어졌어? 옆에 있어주면 안돼? 나 네 첫 여자자나 ㅜㅜ 첫사랑이자나 ㅠㅠ"
나를 향한 그녀의 고백.
그녀를 조금더 끌어당겨 꼭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줄수 밖에 없었어
내 가슴에 기대에 점점더 움찔움찔 거리며 울고있는 그녀.
혹여나 내가 거절할까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거리고 있는 그녀.
어떤 대답을 할지 무서워 차마 내 얼굴을 볼수 없는지. 푹 숙이고 있어서 어떤 표정인지 알수 없었지만
꼭 그 표정을 볼 필요는 없었어.
어짜피 내 대답은 하나로 정해져있었으니까
"나 아직 사랑이 뭔지 잘 몰라요. 근데 처음부터 누나가 좋았고 지금도 앞으로도 누나를 좋아할꺼에요"
"울지마요. 나 어디안가요."
"미안해요 앞으로 내가 조금더 노력할께요. 정말 정말 좋아해요"
내 대답을 듣고 그녀는 더욱더 크게 소리내며 울기 시작했고
한참 울고 있는 누나의 고개를 끌어올려
그렇게 누나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개었지.
끅끅 거리면서 우느라 일그러진 그녀의 입술. 키스 같은게 아닌 정말 말 그대로의 입맞춤
훌쩍이며 흐르는 콧물.
뺨을 따라 축축히 젖어있는 눈물.
정말 말그대로 눈물콧물 범벅이 된 첫 고백과 입맞춤.
그 짧은 입맞춤을 하고 살짝 떨여져서 바라보자
딱 한마디 하더라
"힝… 창피해 ㅜㅜ"
선배라고 불렀고,
사랑이라고 속삭였으며
미니스커트를 즐겨입으며 어른처럼 꾸며보았지만
여전히 그녀도 갓 21살의 어린 '애' 였으며
그 어린 '애' 와 함께 있는 나 역시도 20살의 철없는 어린 '애' 였기에
모든게 서툴고 어리숙한 연애는 또한번의 고백으로 한걸음 나아가게 되었어.
이미 끊겨버린 지하철.
그 지하철은 핑계일뿐. 지금은 그냥 그녀와 함께있고 싶어서
두번다시 떨어지지 않으려는듯 팔에 딱붙어 훌쩍이고 있는 그녀를 데리고
멀리 보이는 반짝반짝 거리는 화려한 네온사인을 향해 걸어가게 되었지
조용히 말없이 쫓아오는 그녀.
괜찮다고 다독이고 있지만, 괜찮기는… 미친듯이 뛰고 있는 내심장.
어디로 가면 되는거지??'
들어가면 어떻게 이야기해야하지??'
누가 쳐다보고 있지는 않겠지??
온갖 걱정과 함께. 그렇게 난 첫 모텔의 문을 밀고 들어가고 있었어
"어서오세요~" 라고 인사는 하지만 약간은 귀찮은듯한 직원? 의 인사말에
"저기.. 자고 갈껀데요" 라며 어리숙하게 말하는 나를 힐끗 쳐다보며 기계적으로 계산을 하고
무언가 주섬주섬 건네주며 5층으로 가세요.
라고 말하고는 빨리 가라는듯 카운터안쪽으로 쑥 들어가버린 사람.
그 카운터를 뒤로하고 어색하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잠시후 어둑한 복도앞에 서게 되었지
이 썰의 시리즈 | ||
---|---|---|
번호 | 날짜 | 제목 |
1 | 2020.08.27 | 지난날의 이야기 _ 1 (12) |
2 | 2020.08.27 | 지난날의 이야기 _ 2 (13) |
3 | 2020.08.29 | 지난날의 이야기 _ 3 (5) |
4 | 2020.08.29 | 지난날의 이야기 _ 4 (8) |
5 | 2020.08.30 | 현재글 지난날의 이야기 _ 5 (6) |
6 | 2020.09.01 | 지난날의 이야기 _ 6 (7) |
7 | 2020.09.02 | 지난날의 이야기 _ 7 (7) |
8 | 2020.09.06 | 지난날의 이야기 _ 8 (6) |
9 | 2020.09.08 | 지난날의 이야기 _ 10 (8) |
10 | 2020.09.08 | 지난날의 이야기_11 (8) |
11 | 2020.09.10 | 지난날의 이야기_12 (10) |
12 | 2020.09.10 | 지난날의 이야기_13 (6) |
13 | 2020.09.14 | 지난날의 이야기_14 (7) |
14 | 2020.09.15 | 지난날의 이야기_15 (11) |
15 | 2020.09.16 | 지난날의 이야기_16 (9) |
16 | 2020.09.19 | 지난날의 이야기_17 (6) |
17 | 2020.09.22 | 지난날의 이야기 _ 18 (10) |
18 | 2020.09.22 | 지난날의 이야기_19 (11) |
19 | 2020.09.23 | 지난날의 이야기_20 (9) |
20 | 2020.09.25 | 지난날의 이야기_21 (8) |
21 | 2020.09.29 | 지난날의 이야기_22 (9) |
22 | 2020.10.06 | 지난날의 이야기_23 (11) |
23 | 2020.10.10 | 지난날의 이야기_24 (12) |
댓글 30포인트
Comments
6 Comments
여러분 VIP, 레전드 자료실 꼭 보세요.
자료의 퀄리티에 두번 놀랍니다. [무료 등업 클릭]
자료의 퀄리티에 두번 놀랍니다. [무료 등업 클릭]
글읽기 -30 | 글쓰기 +200 | 댓글쓰기 +30
총 게시물 : 33,165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