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의 이야기_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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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냄새 ]
짧디 짧은 휴가의 세번째 날
거의 점심시간이 다 되서 밖에 나온 우리는
단 1초도 떨어지기 싫기에 항상 꼭 붙은채로
한시간이 아깝다는듯이 이곳저곳을 함께 다니며 순간순간을 공유하고 있었어
그러다 어느덧 다시 어둑어둑한 밤이 찾아왔고,
잔뜩 엉망이 되버린 속옷과, 갈아입을 옷이 필요했기에 오늘은 집에서 편히쉬고
내일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며 아쉬운 인사를 나누고 있었지
"조심히 들어가요. 내일 일찍 마중올께요"
아쉬운 인사와 함께 사랑스러운 그녀를 배웅해주며 손을 흔들다가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졌을때 천천히.. 발걸음을 떼고 있었어.
단지 그녀가 몰랐던건. 집으로 가는 길이 아닌.
살짝 떨어져있는 구석의 한 놀이터로 향하는 발걸음이었지.
짧은 휴가기간 동안 여러 시선들 때문에 함께하지는 못하겠지만,
귀엽고 사랑스러운 얼굴만이라도 한번 보고 가려했기에
규영이에게 집 앞에서 기다린다는 문자 하나만을 남긴채 잠시 앉아 기다리고 있었어
그러기를 잠시. 기다림 끝에 저 멀리 나의 또하나의 그녀. 규영이가 보이기 시작했는데
조금 달랐던건, 그날 만큼은 반가운 발걸음이 아닌.
꽤나 더딘 걸음으로 망설이듯 다가오는 모습이었지.
한걸음 한걸음 다가올수록 울음이 터지기 직전인 그녀의 얼굴이 보였고
결국 내 앞에 다가온 그녀의 그 큰눈에서 주르륵~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더라
그 흔한 흐느낌 하나 없이 내 옷자락을 붙잡고 하염없이 흘리는 눈물.
반갑게 맞이하며 인사를 할 상황이 아니었기에,
아무말 없이 그냥 안아주고 토닥여줄수밖에 없었지
거의 10여분동안은 아무말도 없이 토닥 거리기만 했던거 같아.
겨우 진정이 되가는듯 그녀의 들썩이던 어깨가 잦아들때
그래도 반가운 마음은 전해야했기에 조심스레 말을 걸어 보았어
"나 안보고 싶었어?? 울기만 하네… 난 많이 보고싶었는데…"
아직 나를 바라보지도 못한체 훌쩍이고 있는 그녀.
잠시 기다림 끝에 겨우 목이 메여가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수 있었지.
"오빠 군대 갈때도… 언니만 안아주고…"
"어제 나도 많이 기다렸는데… 언니 만나러가서 연락도 없고…"
"언제 올지 몰라서 어젯밤 밤세도록 기다렸는데…."
내가 선배의 몸을 탐하며 행복감에 젖어들때
또다른 그녀는 더욱 애타는 마음으로 기다리기만 했다는 생각에
가슴 한쪽이 찡~ 하니 아려오더라
미안하다는 말 이외에는 그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었지.
한참 미안해.. 미안해… 그 말만 반복하는 나에게
그녀의 작은손이 다가와 눌러쓴 모자를 벗기더니 짧아진 내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어
멋드러짐과는 거리가 먼.
부대 선임이 쌩으로 밀어버린 밤톨이 머리와
마치 아기와 같은 뽀얀 그녀와 대비되는 시커멓게 변해버린 얼굴.
"… 못생겨졌지? ㅎㅎ"
어색하게 웃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그녀가 살짝 눈웃음을 짓더라
"오빠는 멋있었는데.. 이제는 귀여워 졌네…ㅎ "
분명 웃고는 있는데… 왠지 그녀의 귀여운 눈웃음이 서글퍼 보였었지.
무언가 기분이 착~ 가라앉은 그녀와 함께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조용한 동네 골목을 지나쳐. 약간 떨어진 공원길을 함께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꺼내지 않기를 바랬던 이야기를 시작하더라
"오빠…"
"응?"
"내일도 언니 만날꺼죠?"
"…. 응…. 그래야지…"
"그럼 언제 다시 군대가요?"
"내일모레 저녁까지 돌아가야해…"
"… 그럼 난 못만나겠구나…."
이미 어두워진 늦은밤.
오고가는 사람의 발길이 뜸한 작은 공원의 조용한 숲 속
풀벌레 소리 조차 없이 조용한 침묵이 이어지고 있었어.
그녀의 그 말 한마디가 어찌나 내 마음속 깊이 파고들던지
내가 어떻게할수 없는 환경. 그녀와 함께할 수 없는 이 상황.
그래도 난 그녀의 여린 어깨를 끌어안고 토닥여줄수 밖에 없었지.
"오빠… 그럼 하나만 약속해줄래요?"
"내일은 언니랑 또 밤세 같이 있지말아요."
그녀의 그 부탁에 어찌 안된다고 이야기할까.
"응" 이라고 대답을 하는 나에게 짧은 입맞춤을 하고는
마지막으로 마음 아픈 이야기를 하며 그녀는 집으로 돌아갔어.
"조심히 들어가요… 오늘은... 오빠가 미워요… 언니 냄새나…"
[ 4.5초 ]
4일째 되는날.
한껏 꾸미고 나온 선배와 함께 또다시 이곳저곳을 다니기 시작했어.
함께 치맥을 하던 한강공원도 거닐고, 군대에서는 먹기 힘들꺼라며
서울 곳곳 퍼져있는 맛집 과 디저트 카페등을 돌아다니며 배를 채웠지.
조용한 공원 벤치에 앉아 조금씩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아래
산 넘어 숨어들고 있는 그 야속한 저녁해님을 바라보며,
또다시 사랑을 속삭이며 아쉬운 입맞춤을 하고는 했지만
전날밤 규영이의 부탁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이제 곧 복귀해야한다는 슬픔 때문인지
무언가 평소보다 더욱 가라앉은 마음으로, 아쉬워 하는 그녀를 배웅하며
조용히 다시 놀이터 벤치에 앉아 쓸쓸한 마음을 다독 이고 있었지
혹시나 오늘도 규영이가 마중나와주지 않을까 싶었지만
어제의 그 헤어짐 때문인지 나와주지않는 그녀.
누군가 가슴 깊은곳을 강하게 누르고 있는듯한 답답함을 느끼며
그 환한 귀여운 미소를 다시 보고 싶어. 규영이에게 전화를 해보았지만
길게 울리던 신호음 끝에. 기계적인 안내음만 되풀이 되고 있었어.
분명 나는 오늘도 내가 사랑하는 선배와 하루를 보냈는데
대체 왜… 지금 내 가슴은 이렇게 아려오는거지…
왜 .. 내 눈에 지금 눈물이 맺혀오는건지…
머리는 알고 있지만, 가슴은 아직 알기 싫다는듯.
그렇게 눈물로 지세우며 결국 복귀날의 아침이 밝아왔지.
첫 휴가는 4박5일이 아닌 4.5초라 했던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린 나의 첫휴가.
아침에 부모님께 짧은 인사를 드리고,
다시 내 몸을 짓누르는 얼룩무늬 전투복을 입은채로 흐르고 흘러.
나에게 암구어를 묻고있는 저 시커먼 동굴 속으로 다시 걸어들어가게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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