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의 이야기_13
[ 또다른 고립 ]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들어있는 자정을 넘긴 어둑어둑한 시간.
굳게 닫혀있던 철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리고 있었고
GOP 철책을 지키던 소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뛰어나가 사주 경계를 펼치고 있었어
찌르르르~ 울리던 풀벌레소리조차 뚝 끊겨버렸고
짙게 깔린 어둠처럼 먹먹한 적막이 쌓여있었지
"툭툭툭… 고생해라."
GOP를 담당하는 철책담당 대대장이 마중나와 길게 서있던 우리의 어깨를 조용히 두드리고 있었으나
그 누구도 관등성명을 외치지도 않고 조용한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고
항상 팀 단위로 작전을 수행하던것과 달리.
그날은 20명 남짓한 소대원 전체가 한번에 통문을 통과하고 있었어.
모두가 통과하자 다시한번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우리 등뒤로 두터운 철문이 닫혀버렸고
잠시 우리를 비추던 탐조등의 불빛조차 꺼져버린 그 순간.
달빛조차 하나 없는 깜깜한 어둠속에 우리 소대는 던져졌지
'지잉~' 하는 작은소리와 함께 켜지는 야시경을 통해 온 세상이 녹색으로 보이기 시작하자
조용히 수신호 하는 소대장의 지시에 우리는 어둠속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갔어
'치직~'
혹여나 무전이 감청될까 통신은 하지못하고 사전에 약속된 신호.
무전기를 짧게 켰다 끄며 울리는 작은 잡음을
저 깊은 어둠속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에게 출발신호로 알린채
군대라는 폐쇄된 사회에서도 한층 더 단절된 우리들만의 공간으로 걸어가기 시작했지
GP
가끔 총격사건으로 뉴스에도 나오기도 하고, 이상한 영화의 주제가 되었던곳이기도 한
DMZ 안에서 북한을 감시하기위한 최전선의 작은 초소
오늘은 옆중대의 GP 경계근무가 종료되어,
다음 차례인 우리 중대가 각 소대별로 배정된 GP로 투입되는
GP근무 교대 작전일이었지
한참. 두어시간을 걸어가다가 저 멀리 군사분계선과 북한의 불빛이 시야에 들어올때쯤
산 중턱에 환한 빛을 비추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작은 성채. GP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
이제 저 곳에 들어가면 3개월 동안은 외출.외박.휴가.면회 하다못해 전화까지 그 모든것이 차단되며
가끔 우리에게 식재료를 건네주러 오는 보급작전 인원들만 마주하게 될
완전히 고립된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었지
이제 겨우 내 가슴팍의 짝대기가 하나에서 둘로 늘었는데,
서서히 막내에게 일을 나눠주며 여유를 조금은 찾아 그녀들에게 전화도 해야하는데…
젠장. 모든게 망했다.
[ 태양을 피하고 싶어서 ]
"삐비!!! 삐비!!! 삐비!!"
비상벨이 울리고, 땅속에 거미줄처럼 퍼져있는 통로를 미친듯이 뛰고 있는 나.
"빨리!! 빨리!!!"
여기저기 외치는 소리속에 간이 탄약고에서 탄통을 꺼내고
일부 인원은 각종 공용화기에 삽탄을 하는듯 정신이 없었지.
"방벽에 착탄 2발! 고가초소 착탄 3발!! 사상자 1명!!"
스피커에서 울리는 소리가 통로 안에서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고
나는 내 지정된 벙커로 뛰어들어가 무전기를 켜고 망대기를 하고 있었어
그러기를 잠시 소란스러운 발걸음이 잦아들때쯤.
"훈련종료. 전 GP원 연병장으로 집합."
GP장의 목소리가 훈련이 끝났음을 알려왔지.
주섬주섬 장구류를 챙겨가며 벙커를 빠져나오자
여기저기서 선임들이 채 허리가 펴지지않는 좁은 통로를 지나가며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었어
"x팔 전쟁광 새끼. 이래서 육사 출신들은 안돼!"
잠시후 땅굴의 입구에서 기어나오듯 빠져나온 우리는
좁은 연병장에 옹기종기 모여서 GP장을 기다리고 있었지
"오늘 훈련도 수고했다! 적의 도발에 언제나 즉각적인 대응을 할수 있도록~~"
한참 떠들고 있는 GP장의 연설은 듣는둥 마는둥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생각은 다른곳을 향해가고 있었어.
우리가 정신없이 벙커를 뛰어다닐때
취사장에서는 '치이익~' 소리를 내고 고기가 구워지고 있었거든
육군 표준식단표에 의해 식재료가 공급되지만
GP에는 우리 소대원만 있기에 요리도 알아서 자급자족 해야하는 근무였어
당연히. 국 끓여먹으라고 공급된 고기를 구워먹기도 하고~ 튀겨먹기도 하고~~
가끔 너무나도 맛없는 식재료가 과다하게 공급될때에는 몰래 파묻기도 하면서
나름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지
더욱이 가장 좋았던건.
고가초소 하나만 덜렁 땅위에 있고, 화장실. 내무실. 식당.
그 모든것이 땅속 깊은곳 땅굴안에 있기에 햇빛을 보지않아
군인답지 않게 피부가 하얗게 변한다는게 모든 소대원들의 기쁨이었어
GP근무가 끝나면 위로차원에서 장기 휴가를 보내주기에
모두 근무가 끝나는 날만을 기다리며 태양을 피하는 나날이 지속되었지
[ 편지 ]
아침부터 GP가 분주한 어느날
나는 당일의 도약 주파수를 맞춘 무전기에서 지금 한참 작전을 뛰고있는
어느 팀의 무전을 듣고 있었지
"현시각 ㅇㅇㅇ 통과. ㅇㅇㅇ 통과"
내가 원하는 무전이 들려온 순간. 옆에서 기다리는 부GP장에게 보고했어
"이제 한 5분이면 도착할것 같습니다"
"오~ 그래? 야!! 문열어!!! 밥차 온다!!!"
잠시후 쿠르릉~ 소리를 내며 호위차량이 먼저 들어오고
뒤이어 우리의 생명줄인 쌀과 부식이 가득차있는 트럭이 들어오고 있었지
소대원들은 모두 트럭에 달라붙어 잽싸게 부식류를 옮겨가기 시작했는데
내 마음은 엉뚱한곳에 향해있었어.
호위차량에서 뛰어내려, 장전되어있는 탄창과 실탄을 빼내고 있는 작전인원들.
그들의 등주머니에 내 소중한 편지가 담겨 있었거든
보급작전이 종료되고, 또다시 고요함이 찾아온 GP.
누군가는 땅속에 있는 침상으로 기어들어가 잠을 청하며 야간근무를 준비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텅! 텅! 소리를 내며 체력단련실에서 몸집을 키우고 있을때
나는 조용히 벙커 위 작은 언덕에 앉아서 저물어가는 태양빛에 비춰가며 편지를 읽기 시작했지
주둔지에 있을때는 주기적으로 받아보던 편지가
이제는 보급작전때 한번에 몰아서 받았기에 꽤나 쌓여져버린 편지다발.
그 다발이 이 답답한 일상에서 겨우 빠져나갈수 있는 청량감 가득한 도피처 같은 존재였어
여전히 나를 보고싶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해주는 현진선배의 편지.
어느 대학을 갈지 목표가 생겼다며 자랑하는 귀여운 규영이의 편지.
그런데… 사람은 참 간사한것 같아.
분명. 아직 선배를 사랑한다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는데,
어느덧 내 손길은 선배의 편지를 뒤로 넘기고 규영이의 편지를 찾고 있더라
그녀의 눈웃음을 쏙 빼닮은 귀여운 글씨체의 풋사과향이 느껴지는 편지를
읽고 있으면 은은하게 번지는 미소와 따뜻해지는 내 마음.
애절한 느낌이 그대로 전해져와 읽고 있다보면 가슴 아리게 보고싶어지는
첫사랑인 선배의 편지.
내 마음이 대체 무엇인지. 나조차도 헷갈려하며
그렇게 그날의 해도 저물어 가고 있었지.
[ 가을빛에 물드는 낙옆처럼 ]
어느덧 시간은 흐르고 흘러.
한참 푸르르던 DMZ 안이 황금빛 색깔로 물들어가기 시작한 가을.
그동안의 경계근무를 끝마치고 서서히 교대할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어.
몇달동안 땅속 생활을 하다보니 마치 군입대 전처럼
하얗게 되돌아온 내 손 끝을 신기한듯 바라보기도 했고
소대원들 모두가 단합하고 길러버린 머리카락을
어색하게 쓸어넘기며 남은 날짜를 세어보고는 했지
그런 나날들중. 어느날 늦은밤.
내 귓가에 들려오는 작은 잡음소리 하나.
' 치지직~ '
우리와 교대할 작전팀이 출발했지.
몇시간후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어둠속에서 굳게 닫혔던 GP의 문이 열리고
시커먼 어둠속에서 스믈스믈~ 검은 물체의 움직임이 보일때쯤
한명.두명. GP안으로 들어오며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우리의 고립생활은 끝이났어.
몇일뒤.
도심지로 빠져나가는 버스로 번잡한 시골의 한 터미널 구석.
14박15일이 적힌 작은 종이쪼가리를 주머니에 구겨 넣은채
공중전화의 수화기 넘어 신호음이 끊기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지
"뚜~~~ 뚜~~~~ 뚜~~~"
"여보세요?"
잠시간의 기다림끝에 기다리던 목소리가 들렸고
한여름의 푸르렀던 잎사귀가 가을빛에 물들어 노랗게 변하듯이
그동안 그렇게나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내 입에서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부르게 되었지
"규영아~~~"
이 썰의 시리즈 | ||
---|---|---|
번호 | 날짜 | 제목 |
1 | 2020.08.27 | 지난날의 이야기 _ 1 (12) |
2 | 2020.08.27 | 지난날의 이야기 _ 2 (13) |
3 | 2020.08.29 | 지난날의 이야기 _ 3 (5) |
4 | 2020.08.29 | 지난날의 이야기 _ 4 (8) |
5 | 2020.08.30 | 지난날의 이야기 _ 5 (6) |
6 | 2020.09.01 | 지난날의 이야기 _ 6 (7) |
7 | 2020.09.02 | 지난날의 이야기 _ 7 (7) |
8 | 2020.09.06 | 지난날의 이야기 _ 8 (6) |
9 | 2020.09.08 | 지난날의 이야기 _ 10 (8) |
10 | 2020.09.08 | 지난날의 이야기_11 (8) |
11 | 2020.09.10 | 지난날의 이야기_12 (10) |
12 | 2020.09.10 | 현재글 지난날의 이야기_13 (6) |
13 | 2020.09.14 | 지난날의 이야기_14 (7) |
14 | 2020.09.15 | 지난날의 이야기_15 (11) |
15 | 2020.09.16 | 지난날의 이야기_16 (9) |
16 | 2020.09.19 | 지난날의 이야기_17 (6) |
17 | 2020.09.22 | 지난날의 이야기 _ 18 (10) |
18 | 2020.09.22 | 지난날의 이야기_19 (11) |
19 | 2020.09.23 | 지난날의 이야기_20 (9) |
20 | 2020.09.25 | 지난날의 이야기_21 (8) |
21 | 2020.09.29 | 지난날의 이야기_22 (9) |
22 | 2020.10.06 | 지난날의 이야기_23 (11) |
23 | 2020.10.10 | 지난날의 이야기_24 (12) |
댓글 30포인트